[신화망 테구시갈파 8월8일] 온두라스 라 리마시에는 송환된 이민자들을 위한 수용 시설이 있다. 거의 매일 미국에서 추방된 온두라스인 100명 이상이 수용된다.
불법 이민 증가는 올해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미국 정치인들은 온두라스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을 '불법 이민자 수출국'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극심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의 불법 이민 문제 역시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때 '바나나 공화국'으로 불리던 온두라스는 제멋대로인 미국 자본의 '오아시스'이자 현지 빈곤 노동자들의 '녹색 감옥'이 됐다.
◇'판도라의 상자'에 담긴 바나나
1870년 로렌조 베이커라는 이름의 미국인 선장이 자메이카에서 배로 바나나를 실어와 뉴저지에서 판매했다. 그 이후로 바나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과일 중 하나가 됐다. 무역 회사가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돼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서 미국으로 바나나를 운송했다.

19세기 말 미국은 미국∙멕시코 전쟁, 남북 전쟁, 서점 운동(westward movement) 등을 차례로 겪으며 국내 세력을 규합하고 대외 확장에 나섰다.
1899년 온두라스는 미국의 과일 무역업자 바카로 형제에게 첫 토지 양허권을 부여했다. 대신 그들은 온두라스에 철도를 부설하기로 했다. 이후 미국 바나나 무역상 사무엘 제머레이 역시 토지 양허권을 가지고 온두라스에 쿠야멜 프루트 컴퍼니(이하 쿠야멜 프루트)를 설립했다.
제머레이의 지원 아래 해외를 떠돌던 마누엘 보닐라 전 온두라스 대통령이 1910년 12월 용병을 이끌고 미국에서 온두라스로 돌아와 반란을 일으켰다. 대통령 권좌를 되찾는데 성공한 그는 바나나 수출 관세 평생 면제, 온두라스 북부 1만ha 토지 임대, 오모아 항구 사용권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제머레이에게 보답했다. 1933년 제머레이는 또 다른 미국 과일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이하 유나이티드 프루트)를 인수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여러 차례의 무력 개입과 쿠데타로 미국 자본은 온두라스의 주요 경제 부문을 점차 장악해 갔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쿠야멜 프루트 등 미국 기업들은 온두라스 북부의 광활한 땅을 점령해 대규모 바나나 농장을 건설했다. 또한 교통, 전기, 제조업 등 경제 명맥도 장악해갔다.
1913년 온두라스 대외무역의 90% 이상이 미국에 의해 독점됐다. 미국 다국적 기업의 통제 아래 온두라스는 바나나 생산 위주의 고도로 단일화된 경제 구조가 형성됐고 식량과 같은 필수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져 경제가 지나치게 취약해졌다.

◇나라 속의 나라(國中之國)
오늘날 온두라스의 바나나 농장은 여전히 푸른 잎이 무성하다. 하지만 푸르고 생명력이 넘치는 이곳은 당시 온두라스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에스테반 엘비르(91)는 젊은 시절 온두라스 북부의 술라 계곡에 있는 바나나 농장에서 일했다. 그는 바나나 농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통제가 전방위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회사는 각 농장에 바늘, 모자, 신발, 칼, 도끼, 권총 등 모든 것을 판매하는 매점을 열었다. 하지만 외부 상인이 농장 내부에서 물건 판매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고 경쟁도 허용하지 않았다.
엘비르는 당시 노동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며 걸핏하면 얻어맞고 심지어 맞아 죽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회사의 관리자가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했지만 불평해서도, 불평할 수도 없었고 또 불평할 곳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나이티드 프루트는 한때 중앙아메리카 여러 국가의 경제 명맥을 장악해 '나라 속의 나라'를 설립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는 온두라스에서 주로 텔라철도, 트루히요철도 등을 통해 경영활동을 펼쳤다. 관세 면제 등 특권을 누리고 있었던 두 회사는 철도 부설을 통해 철도 노선 주변의 광대한 토지를 확보하는 한편 현지의 목재 등 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인 에우헤니오 소사 온두라스 통계청(INE) 청장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온두라스에서 이러한 특권을 얻기 위해 (미국) 과일회사는 온두라스에 철도를 부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키지 않고 마지못해 일부 노선만을 건설했다"며 "온두라스는 지금까지도 전국을 가로지르는 철도 노선이 건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사 청장은 "게다가 과일회사들이 정치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실제로 대통령을 임명∙해임할 수도 있었다"며 "온두라스에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스탠더드 푸르트 컴퍼니 등 몇몇 막강한 회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회사가 정부와 잘 맞지 않으면 무장 단체를 따로 조직해 또 다른 정치 세력을 육성하고 선거 부정을 일으켜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런 식으로 많은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했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온두라스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무력이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미군은 각각 1903년, 1907년, 1911년, 1912년, 1919년, 1924~1925년, 1982~1990년에 온두라스에 군사개입을 했다.
◇총파업으로 완전히 달라진 온두라스
미국의 온갖 착취∙약탈∙간섭에도 온두라스 국민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몇십 년 동안 온두라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을 얻어내기 위해 여러 차례 파업을 벌였다.
"감독관들은 노동자들을 가축처럼 취급했습니다. 자체 노조가 없었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고 제안하면 감옥에 던져 넣었습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며칠간 보이지 않다가 얼마 후 울루아강이나 차멜레콘강에서 시신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입니다." 엘비르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1954년 4월 텔라부두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 조건 문제로 파업을 예고했다. 5월에는 광산∙철도∙섬유∙담배 산업 노동자와 온두라스 북부 바나나 재배 지역의 노동자∙농민∙소농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모든 중남미 국가의 노동자들이 온두라스 노동자 파업에 지지를 표명했다. 60일 이상 지속된 총파업은 결국 승리했고 노동자들의 요구사항 대부분이 관철됐다.
1974년 3월 온두라스를 포함한 중남미 바나나 생산 7개국이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장관급 회의를 열고 수출용 바나나에 대해 1파운드당 1~2.5센트의 부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미국 바나나 회사들은 바나나 구매를 거부하고 수확을 중단하는 등 방해 공작을 벌였지만 바나나 생산국들이 단결해 투쟁을 이어갔다. 결국 미국 회사들은 규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고 손실을 보상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9월, 온두라스를 비롯한 중남미 5개국은 바나나 수출 조합인 UPEB(Union for Banana Exporting Countries)를 결성했다.
1975년부터 온두라스 정부는 미국 바나나 회사들에 제공된 모든 양허와 계약을 취소하고 그들이 소유한 일부 토지를 국유화한다고 발표했다. 그 후 온두라스 측은 미국 자본이 통제하던 부두와 철도를 인수하고 바나나의 생산∙운송∙판매를 자체적으로 담당했으며 전체 산림 자원과 목재 가공 산업을 국유화했다. 이로써 온두라스는 외국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국가 경제 발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현 대통령 고문을 맡은 마누엘 셀라야 전 대통령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의 반제국주의 투쟁은 역사적인 일이며 노동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지금의 온두라스는 이를 기반으로 탄생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불공정의 역사
뿌리 깊은 불공정의 역사는 지금도 온두라스인들에게 계속되고 있다.
미국 이민구치소에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경험한다. "납치된 것 같았어요. 그곳에 17일 머물렀는데 가족들은 제 상황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들(미국 당국)은 전화 통화를 허용하지 않아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매일 바닥에서 잤고 오늘 그곳을 나온 후에야 햇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온두라스 출신 베르나르드(25)의 말이다.

베르나르드를 비롯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송환돼 라 리마시 이주민 수용시설로 보내진 이주민들이다.
수용시설 책임자는 이들 온두라스인 대부분이 순박하고 착하다며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남미 이민자들을) 더 공평하게 대우하고 합리적인 임금을 지급하며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자원이 가장 풍족한 국가 중 하나인 온두라스가 지금은 중남미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며 "그 원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온두라스와 같은 나라를 약탈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2009년 6월 28일 온두라스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당시 대통령인 셀라야가 하야했다. 이후 반 년 가까이 온두라스의 정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이 쿠데타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다나 프랭크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즈 교수는 저서 '온두라스의 긴 밤(The Long Honduran Night)'에서 "(미국은) 온두라스를 관할하에 두고 온두라스 과두 정치인들과 (미국)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경제 어젠다를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경제 계획의 목적은 교사, 공장∙농장 노동자, 자신의 토지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힘들게 번 돈을 빼앗는 데 있었다"고 꼬집었다.
쿠데타 이후 저항에 나선 온두라스 국민은 탄압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살 터전을 잃고 떠돌았다. 폭력과 빈곤으로 인해 일부는 어쩔 수 없이 미국행을 선택했다. 프랭크는 미국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 모두 미국이 온두라스 국민의 생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또 미국이 이민 열풍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셀라야는 20세기 중남미나 카리브 지역에서 일어난 쿠데타 중 상당수가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통합과 각성의 길로 들어선 온두라스
2021년 말 셀라야의 부인,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온두라스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셀라야는 2013년, 2017년 두 차례 대선 부정선거를 치른 후 2021년에야 온두라스 국민이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카스트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외국 이익집단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하고 내부적으로 외부 세력의 지원을 받은 과두정치 구도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재정 독립의 국가 체제를 재건했으며 부패와 조직범죄 척결에 힘쓰며 인프라∙에너지∙환경∙안보∙의료∙교육 등 분야 개혁을 단행했다.
대외적으로 온두라스 정부는 미국의 압력을 거부하고 2023년 3월 중국과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카스트로 대통령은 중국과의 수교는 온두라스 정부가 내린 역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저는 온두라스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왔습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중국과 수교하고 중국과 협력하면 온두라스에 발전 기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카스트로 대통령의 말이다.
올 3월 온두라스는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 2024년 순환 의장국을 맡게 됐다. 카스트로 대통령은 지역 통합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며 더욱 공정하고 공평하며 번영하는 지역 건설을 제창하겠다고 약속했다. 온두라스는 아이티 위기와 관련한 외부의 간섭, 에콰도르와 멕시코 간 외교 분쟁 중재 등 의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또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관해 온두라스 정부는 가자지구의 휴전, 인도주의 회랑 설치, 평화 협상 개시를 주장했다.
온두라스 최대 바나나 생산업체 중 하나인 나나바나나의 산드라 데라스 최고경영자(CEO)는 온두라스에 5만ha 이상의 바나나밭이 있다며 과거엔 대부분 미국 기업이 소유했지만 이제 대부분의 바나나 사업을 온두라스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자 바나나 재배 자원의 소유주입니다. 언제나 온두라스 국민의 이익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 것입니다." 데라스 CEO의 말이다.
현재 이 회사가 생산한 바나나 대부분은 국내 시장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그는 1ha의 바나나를 재배할 때마다 두 가구를 위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개발도상국인 온두라스가 미국으로 이민자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셀라야 전 대통령은 카스트로가 온두라스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내외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온두라스 정부가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를 용감하게 비난하는 입장을 취했고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의 독립과 공존을 향한 원대한 비전을 품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글로벌 사우스 발전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문 출처:신화통신 한국어 뉴스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