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의 세기적 비극과 서구 열강에 맞선 이집트인의 투쟁 (03분23초)
[리뤄린(李若琳), 신화통신 기자] "이집트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개의 강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 뒤에 있는 나일강이고 다른 하나는 수에즈 운하입니다. 수에즈 운하는 개통 이후 165년 동안 이집트 국민이 제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가 독립을 위해 애쓰는 놀라운 역사를 목격해야 했습니다."
이집트에 위치한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한다. 이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로다. 1859년 착공된 운하는 1869년에 공식 개통됐다. 처음에는 운하 공사가 수작업으로 진행돼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이집트 노동자가 사망했다.
[나세르 만두르, 수에즈운하대학교 총장] "10년 동안 수에즈 운하를 파는 과정에서 100만 명이 넘는 이집트인이 투입됐습니다.
12만 명 이상의 이집트인이 운하를 파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운하를 파낸 사람은 이집트인이었고, 운하 건설 비용은 이집트가 전액 부담했습니다."
1876년, 급격히 쌓여가는 부채에 압도된 이집트는 파산을 선언했다. 서구 열강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운하를 완전히 장악했다.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끄는 이집트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친서방 왕조를 전복시켰고 이듬해 이집트 공화국이 수립됐다. 1956년 7월 26일,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 회사의 국유화 법안에 서명했다고 선언했다.
전 이집트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은 영국과 프랑스의 핵심 이해관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전쟁을 일으켜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비난의 압력과 운하를 지키겠다는 이집트 국민의 확고한 결의로 침략자들은 결국 이집트에서 철수했다.
[나세르 만두르, 수에즈운하대학교 총장] "1956년 이전 운하는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운하 국유화 이후 이집트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점령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입니다.
어떤 국가도 점령이나 자원 착취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와엘 카두르, 전 수에즈운하관리청(SCA) 이사회 위원] "제 인생의 대부분을 수에즈 운하를 위해 일했습니다. 수에즈 운하에서 보낸 최고의 날들을 기억합니다. 1956년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모든 이집트인은 수에즈 운하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 역사의 일부이자 자유를 위한 투쟁의 일부입니다."
[신화통신 기자 카이로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