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망 베이징 8월19일] 8월 15일 패전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지 77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신화통신 기자단은 나가사키항 너머 '군함도(軍艦島)'를 찾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아시아 국민들의 강제노역 역사를 살펴보고 침략 전쟁에 대한 일본의 반성의 흔적을 찾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적 범죄를 직시하지 않고 오히려 진실을 감추고 지우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보였다.
'군함도'의 본래 이름은 하시마섬으로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9㎞ 떨어진 해상에 위치해 있다. 군함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예부터 군함도라 불렸다. 2015년 군함도를 비롯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이 치열한 논쟁 끝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중 최대 쟁점은 바로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역사 부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이 섬으로 강제노역에 동원돼 비인간적인 대우로 고통받았고 심지어 학대를 당해 사망했다.
지난 8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바라본 '군함도'. (사진/신화통신)
그해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근대 산업 유산을 세계문화유산 명단에 등재하되 '각 유적지의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사람들에게 알릴 것을 전제로 달았다. 신청 과정에서 일본 측 역시 강제징용된 수많은 조선인이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유적지에서 자행된 역사적 사실을 알릴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군함도 안내책자에 적힌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장황한 역사 연대기를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1925년에서 1955년까지 30년간의 역사는 1941년 군함도 석탄 생산량 41만1천100t 달성, 1945년 군함도에서 석탄을 운반하던 선박 미군 어뢰에 의해 격침 등 단 두 건의 기록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침략 전쟁 시기 일본의 강제징용, 그곳에서 비명횡사했던 사람들...안내책자에는 '조선'이나 '중국'이란 단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난 8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바라본 '군함도'. (사진/신화통신)
사료에 따르면 일본 미쓰비시는 1939년부터 조선인을 대규모로 강제징용해 석탄 채굴 작업에 동원했다. 이어 1943년부터 중국인 포로를 군함도로 보내 강제노역을 시켰다. 이 시기에 수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열악한 환경에서 비명횡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쪽으로는 홋카이도, 남쪽으로는 규수에 이르기까지 '군함도'의 사례처럼 일본이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들을 강제징용해 노역에 동원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처럼 일본 곳곳에 강제징용자들의 피눈물이 배어 있다.
군함도 안내책자에는 이 시기 역사에 대한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가이드 역시 배에서 설명해줄 때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자칭 나가사키 역사 전문가라던 남자 가이드는 나가사키항을 출발해 군함도로 향하는 길에 군함도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신나게 설명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석탄과 광석이 미쓰비시 조선소와 미쓰비시 제철소에 공급됐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 산업화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 보니 무고하게 스러져 간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커녕 가해자에 대한 비판의 내용 또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왜 강제징용에 대한 역사 부분이 전혀 기재되지 않고 또 언급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이드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강제징용?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강제징용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기자가 휴대전화로 검색해 '군함도' 관련 일본어 자료를 보여 주자 가이드는 힐끗 쳐다본 뒤 "죄송하지만 당시 역사에 대해선 제가 잘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따져 묻자 그는 눈길을 피하며 "저는 '군함도' 관광기관 소속으로 회사 규정에 따라 안내하고 있다"고 다소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한국 국민들이 지난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과 증언을 들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사실 일본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할 당시 유네스코에 군함도 강제노역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등재 직후 일본산업유산정보센터는 강제징용 사실을 부인하는 증언과 자료를 내놓아 국제사회의 빈축을 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8년 일본 측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과정에서 강제노역의 역사를 충분히 알릴 것을 요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 측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군함도 등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강제노역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사실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문화유산 등재 신청 당시 국제사회에 내놓은 약속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전쟁 시기 강제징용된 노동자들이 참혹한 노동 현장에 내몰려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일본 측에 요구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우익세력의 영향으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역사를 서술∙공부∙연구함에 있어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워 갔다. 오늘날 수많은 일본 국민의 눈에 군함도는 일본 근대사의 번영과 근대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유산일 뿐이며, 강제노역자로 끌려와 이곳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타국 노동자의 운명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날의 일본 가이드가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관광 일정이 끝났을 때 기자단에게 "이곳에선 강제징용 역사가 없었다"고 외친 일본인 군함도 탐방 관광객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감추고 회피한다 해도 역사를 거스를 수 없다. 역사적 죄악은 지워서는 안 되고 역사적 사실 또한 왜곡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원문 출처:신화통신 한국어 뉴스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