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망 베를린 12월13일]1937년 겨울, 난징(南京)이 함락됐다. 수십만 명의 중국 군인과 민간인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며 제2차 세계대전 역사상 어두운 한 페이지로 기록됐다.
도시가 피로 물들던 당시, 지멘스에서 근무하던 독일인 존 라베는 끝까지 난징에 남아 여러 외국인들과 함께 분주히 뛰어다니며 '국제 안전구'를 마련하고 20만 명이 넘는 중국 민간인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바쁜 와중에도 라베는 일기를 꾸준히 써 일본군의 잔혹 행위를 상세히 기록했다. 오늘날 이 일기들은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범죄를 폭로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나는 이러한 잔혹 행위를 직접 목도해야만 한다. 그래야 훗날 증인으로서 이를 말할 수 있다. 이런 극악무도한 폭력 앞에서 침묵해서는 안 된다!" 라베의 일기 내용이다.
1937년 12월 14일, 난징 함락 다음 날.
"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도시가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됐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차가 100~200m 갈 때마다 여러 구의 시체를 마주했다...일본인이 10~20명씩 소규모 부대를 이뤄 도시를 돌아다니며 상점을 모조리 약탈하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38년 2월 11일.
"방금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장군이 '규율이 잘 잡힌 군대'라고 말한 일본군 병사 한 명이 민가에 침입했다. 집 안에는 어머니와 두 딸이 있었다. 이 병사는 딸을 강간하려다 저항을 받자 세 모녀를 집에 가둔 뒤 불을 질렀다..."
이 귀중하고 무거운 기록은 60년 가까이 조심스레 봉인돼 있었다.
1996년 라베의 후손이 '라베 일기'를 세상에 공개한 이후 이는 난징대학살을 폭로하는 가장 중요하고 상세한 사료 중 하나로 평가된다.
라베의 손자 토마스 라베는 할아버지의 행적과 정신을 전 세계에 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나치 독일 역시 대량 학살을 저질렀지만 전후 독일은 스스로 책임을 껴안았다며, 안타깝게도 모든 국가가 역사에서 마땅한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토마스 라베는 일본 우익세력으로부터 여러 차례 위협을 받은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라고 말했다.
"라베의 후손으로서 우리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불의 앞에서 절대로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원문 출처:신화통신 한국어 뉴스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