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보다 넓은 마음'... 中 시진핑과 프랑스의 문화-Xinhua

'하늘보다 넓은 마음'... 中 시진핑과 프랑스의 문화

출처:신화망 한국어판

2024-05-05 17:10:14

편집: 朴锦花

[신화망 베이징 5월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신년사를 할 때마다 중난하이(中南海)에 있는 그의 사무실 책장은 늘 중국과 전 세계의 호기심 많은 책벌레들이 궁금해 하는 대상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중앙방송총국(CMG)과 인터넷을 통해 2024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카메라의 이동에 따라 세심한 시청자들은 시진핑의 책장에서 프랑스의 대표 고전 문학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법의 정신', '레 미제라블', '적과 흑', '인간 희극' 등이 포함된다.

"저는 젊었을 때 프랑스 문화, 특히 프랑스 역사, 철학, 문학,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시 주석은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시 주석은 열정적인 독서가였다. 그의 폭넓은 독서는 글로벌 시야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 중국의 지도자가 된 그는 문화 교류를 자신의 외교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중국과 넓은 세계 사이의 더 나은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올해 중국-프랑스 수교 60주년을 맞아 시 주석은 유럽 국가인 프랑스를 세번째로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프랑스 문화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시 주석이 위대한 동서양 두 문명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가까워지게 만들 것인지, 모든 이의 관심이 쏠려 있다.

스탕달에서 위고까지

1960년대 후반, 10대 시절인 시 주석은 '농민들에게 배우기' 위해서 '지식 청년' 자격으로 중국 황토고원에 위치한 가난한 마을인 량자허(梁家河)로 보내졌다.

시골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독서는 시진핑의 정신적 위안이 됐다. 그는 작은 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고전 문학을 다 읽었으며 그중에는 '적과 흑'도 있었다.

1972년 당시 농촌에서 '교육받은 청년'인 시 주석이 친척들을 방문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돌아온 모습. (사진/신화통신)

시 주석은 "스탕달의 '적과 흑'은 영향력이 매우 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다만 세상의 복잡함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발자크와 모파상의 작품이 최고입니다. 예를 들어 발자크의 인간 희극이 그 예입니다."

프랑스 유명 작가들의 고전 작품은 광범위한 책을 읽은 시 주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프랑스 작가들, 특히 빅토르 위고의 글귀를 자주 인용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체결측 총회(COP21)' 파리기후협정에서 협상을 촉구하면서 레 미제라블의 통찰력 있는 대사를 인용했다. "최고의 자원은 극단적인 결의에서 나옵니다."

시 주석은 프랑스 미술품에도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프랑스 작곡가 비제와 드뷔시를 좋아한다. 그는 장엄한 개선문부터 베르사유 궁전의 호화로운 홀까지 여러 문화 유적지를 방문했다. 그는 시대를 초월한 루브르 박물관의 컬렉션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존경받는 성역도 인류 문명의 영원한 보물로 생각하고 있다.

중국 전통 공연 배우들이 지난 2023년 9월 13일 프랑스 파리 개선문 근처에서 플래시몹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사실상 시 주석은 프랑스 문화를 좋아한 최초의 중국 지도자가 아니다. 과거 1920년대 프랑스 유학 근공검학(勤工儉學)운동 기간 동안, 중국 지도자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샤오핑(鄧小平)은 전쟁, 빈곤, 침략으로 찢겨진 중국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프랑스에 와서 유학했다.

당시 수많은 중국 애국청년들이 프랑스 혁명에 관한 글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 이는 시 주석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프랑스 명작 중 하나인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기도 하다. 시 주석이 한때 회상했듯이 그에게 깊은 감동을 준 에피소드 중 하나는 미리엘 주교가 장 발장을 도와주고 그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격려한 일화다.

"위대한 작품은 독자를 감동시키는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다.

"지음(知音)" 즉 마음이 통하는 친구

프랑스 문화에 대한 시 주석의 인식은 프랑스 지도자와의 교류 및 양국 간 교류에서 문화 교류가 점점 더 두드러지게 된 밑바탕으로 풀이된다.

2019년 프랑스 니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100년 된 저택이자 유럽 문명을 반영하는 축소판으로 여겨지는 빌라 케릴로스에서 시 주석을 초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곳에서 시 주석에게 진귀한 고대 서적인 프랑스어판 '논어도독(論語導讀)' 원본을 선물했다.

갈색 대리석 무늬의 송아지 가죽 덮개, 금빛 장식 무늬가 새겨진 가장자리가 특징인 이 고대 작품은 계몽주의 시대인 1688년 출판됐다. 책의 몇 쪽에는 고대 프랑스어로 "독자에게. 이 책은 공자를 이해하는 열쇠 또는 입문 역할을 할 것입니다."라고 한 줄 곱슬곱슬하게 적혀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둘째)이 지난 2019년 3월 24일 니스 정상 회담에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 첫째)으로부터 1688년 출판된 프랑스어판 '논어도독(論語導讀)' 원본을 선물받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유교 가르침의 초기 역본이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와 볼테르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표지를 펼친 채 책을 부드럽게 들었다. 그는 "귀중한 선물"이라고 전했다. 나중에 이 책은 중국국가도서관의 귀중한 소장품이 됐다.

17세기에 유럽에서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풍)라는 유행이 출현했고 18세기에 이 유행은 중국과의 무역 증가에 힘입어 대륙 전역에서 급하게 성행했다. 동시에 프랑스의 중국학 학자들은 중국 전통 문화의 철학적 토대인 유교에 대한 연구를 탐구하고 그 사상을 유럽 전역에 전파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화 간 교류에 주목했다. 중국 근대의 유명한 학자 고홍명(辜鴻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오직 프랑스인만이 중국과 중국 문명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인만큼 특별한 정신적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중국과 프랑스가 '지음(知音)' 즉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두 나라의 풍부한 문화적 내포로 인해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4월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를 방문하는 동안 두 국가 정상은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 초기, 당시 광둥성 성장인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거주했던 저택의 송원(松園)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두 정상이 정원을 산책하는 동안 고대 중국 악기인 금(琴)의 황홀한 곡조가 매혹적인 선율을 자아내며 공기를 가득 메웠다. 흥미를 느낀 마크롱 대통령은 음악의 이름을 물었다. 시진핑은 '고산유수(高山流水)'라고 답하고 또 곡의 숨겨진 유명 일화인 유백아(俞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시 주석이 지난 2023년 4월 7일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고산유수(高山流水)'를 듣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고대 중국 전설에 따르면 유는 뛰어난 금 연주자였다. 그의 열렬한 청취자인 종은 위의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감정을 파악하는 보기 드문 능력을 소유했다.

시간이 흘러 종이 죽자 슬픔에 잠긴 유는 악기를 부수고 '지음'을 잃은 이제부터는 다시는 연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음은 중국어로 상대방의 음악을 이해하는 매우 친한 친구를 의미한다.

시 주석은 마크롱에게 "오직 지음(마음이 통하는 친구)만이 이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독립국

시 주석은 2014년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연설에서 "바다보다 더 넓은 것은 하늘이고,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란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했다.

지난 2014년 3월 27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신화통신)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명에 접근할 때 하늘보다 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시 주석은 국제 정세가 심각하게 변하는 시대에 문명의 조화로운 공존을 확고히 옹호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파리가 유네스코 개최 도시이고 시 주석이 프랑스를 서구 문명의 주요 대표국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지도자가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문명 비전을 발표할 장소로 프랑스 수도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서로 다른 문화, 종교, 인종 집단을 대표하지만 우리는 운명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일부라는 그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당시 유네스코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는 이렇게 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 주석이 한 말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시계를 60년 전인 1964년으로 되돌리면 중국과 프랑스는 1월 27일 정식 수교를 맺고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는 냉전의 고립이라는 냉혹한 지배를 깨뜨리고 세계 정세를 다극화 세계 질서로 전환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다음날 사설에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두고 '두 독립국의 만남'이라고 불렀다.

시 주석은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샤를 드골 장군은 비범한 지혜와 용기로 중국과 서방 간 교류 협력의 물꼬를 트고 냉전 중인 세계에 희망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추이훙젠(崔洪建) 베이징외국어대학 유럽연합 및 지역발전 연구센터 주임은 "중국과 프랑스는 모두 독립된 문명이지만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1일 베이징 고궁 문화전(文華殿)에서 열린 '자금성과 베르사유궁전-17∙18세기 중국-프랑스 교류' 전시회에 회중시계가 전시돼 있다. (사진/신화통신)

"두 나라는 풍부한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세계 동향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추이 교수의 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지 않고, 결과적으로 지배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헌법위원회 위원장은 프랑스와 중국이 모두 다자주의와 평화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힘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중국과 프랑스의 차이점을 넘어 공통된 주요 사명임에 틀림없습니다." 파비우스 위원장의 말이다.

원문 출처:신화통신 한국어 뉴스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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